정현구 효자 정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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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공근면 학담리
  • 관리 기획감사실 : 033-340-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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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정현구(鄭顯九) 효자(孝子) 정려문(旌閭門) 정현구 효자 정려문은 공근면 학담리 공근중학교 뒤편에 있다. 정현구의 본관은 초계(草溪)로 팔계군(八溪君) 정종영(鄭宗榮)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행이 남달리 지극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3년 동안 새벽마다 묘소를 찾았으며, 삭망일(朔望日)에는 성묘 후에 묘소를 보살피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효행이 조정에 알려져 1891년(고종 28년)에 정려되었다고 한다. 현판의 크기는 가로 186cm, 세로 49.5cm이다. 정려문의 1966년 5월에 중수 되었다.

<정현구 정려현판> 孝子贈通訓大夫司憲府監察草溪鄭顯九之門上之二十八年辛卯十月日 정현구(鄭顯九) 字는 현여(鉉汝) 號는 만수제(晩守齊)니, 초당(楚堂) 存和의 아들이다. 正宗 丁巳 生으로, 孝行으로 복호(復戶 : 요역과 田稅 외에 잡부금 면제)를 받고 高宗 辛卯년에 旌閭(충신, 효자 등에 그들이 살던 고향에 정문을 세워 기림)를 命 받고 司憲府 監察(正6品)을 追贈받았다. 戊辰년에 72세로 卒하였다. 광서(光緖, 1875 - 1908) 17年 10月, 日 「禮曺立案」 右의 효자정여의 절목 立案은 禮曺에 下敎하여 啓目을 粘連하게하고 下敎하기를 이와 같은 상소는 예전에도 있었는데, 前 江原道 進士 金樂容 등이 상소에는 橫城의 苦學生 정현구의 효행에 대하여는 정여의 典禮에 따라 하기를 청하였다. 소위 이르는 정현구는 즉 옛날 贊成靖憲公 宗榮의 祀孫이다. 천성이 순박하고 돈독하며(純마) 지행을 겸비하였다. 어려서부터 그 부모를 멀리 떠나지 않았으며 성인에 이르러서도 그 성실하고 하나 같음이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비가 병에 들어서는 근심의 빛으로 곁에서 옷을 갈아입고 허리띠를 풀 새도 없이 잠시도 눈을 부치지 않았다. 밤에는 북두칠성에 기도하고 몸의 변화는 人篤의 달고 쓴 맛으로 안위를 판단하였다.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는 손가락을 단지하여 피를 내여 먹여 명을 늘이고 병세가 위태로움에 이르러는 한 술의 물도 입에 들이지 않기를 三日 하였다. 그 장례 후에 비록 暴雨와 酷寒에서도 朝夕으로 墓에서 哭을 하였고, 잠시도 상복을 벗지 않고 움막에서 앉아 자기를 3년을 한결같이 하였고, 모친의 상을 당해서도 역시 전과 같이 했다. 매 忌日이 되면 소복을 입고 꿇어 앉아 제사 후 비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일찍이 道內 신하의 啓를 듣은바 있는데, 수십 번 다시하여 典禮를 이와 같이 하여야 마땅하다는 상소가 한결 같으리오, 정현구의 孝行實蹟의 높고 큼이 만약 이와 같다면 공들이 의논하여 그 證驗을 더욱 명확히 함으로써, 특별히 旌閭의 典禮를 시해아형 樹風之政을 의당히 상소와 같이 해야 할 것이오 하니 계하 각조의 신하가 감히 바꾸지 않으니 임금이 이와같이 재가 하였다. 광서 17년 10월 26일 동부승지 신병휴에게 次知(집사)로 하여 충실히 시행토록하고 旌門은 견고하게 설치하고 재목과 장인은 예에 따라 관에서 가행해고, 그 자손의 家를 칭송하여 煙戶과 還穀 등을 일반적 잡역을 아울러 면제하게하고, 立案에 합당하게 행하게 하였다.

관광지정보

  • 주소 : 공근면 학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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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주차

찾아가는길

횡성나들목 →공근(홍천방향)→공근중학교뒷길→정현구효자정려문

주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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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체육관광과 문화예술담당 ( ☎ 033-340-5951 )
최종수정일
2016-04-19 17: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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