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리충혼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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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소 갑천면 매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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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정보

갑천면 매일리에 있는 충혼탑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의용경찰을 조직하여 마을 치안유지에 힘쓰던 중 패주하던 괴뢰군과 접전하다 전사한 이 지방 젊은이 7명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졌다. 1965년 10월 1일에 당시 갑천면장 한웅학(韓雄鶴)과 이곳 면민들이 뜻과 정성을 모아 순국자 1인을 1층으로 하는 7층의 콘크리트 탑을 세웠으나 1983년 12월 1일 도로확장 및 포장공사로 면사무소 뒤로 비를 옮겨 세웠다.

매일리 주민들은 9ㆍ28수복 이후 폐허가 된 고향에 돌아왔으나 치안과 질서가 유지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순분자가 날뛰고 패잔병이 만행을 부리는 무법천지가 되어 있었다. 면소재지인 이 마을의 치안유지는 당시 횡성경찰서 갑천지서의 순경 4명으로는 불가능하게 되자 주민들은 자율적인 치안유지가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지역 젊은이들은 스스로 1950년 10월 초에 의용경찰을 조직하고 자치대를 발족하였다. 대장 김문걸(金文傑, 갑천면 유평리)과 대원 7명은 군번없는 군인으로 아무런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은채 9.9식 소총으로 비록 허약하게 무장했지만 불타는 젊음과 애국심으로 잔류한 패잔병을 색출하고 부역자를 검거하여 군에 이첩하였고, 어답산(御踏山) 전투에서 패잔병과 접전을 벌여 일망타진하는 등 많은 공훈을 세웠다.

1950년 10월말 순찰을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밤순찰 준비를 하던 저녁무렵에 태기산중에 도피 은신하다가 지리산 공비들과 합류하기 위하여 남하하던 북한군 병력이 이 지역을 통과하게 되어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비록 패잔병이지만 중무장한 엄청난 병력과 경찰을 포함한 15명과의 교전에서 지서가 완전히 파괴되고 시가전을 벌이면서 갑천면 삼거ㆍ전촌리까지 쫓고 쫓기는 전투에서 많은 적을 무찔렀으나 끝내 대장 김문걸(金文傑), 대원 박준금(朴準金)ㆍ노성빈(盧成彬)ㆍ이의홍(李義泓)ㆍ신기묵(辛基默)ㆍ박병국(朴炳國)ㆍ홍남석(洪南錫) 7명이 전사하고, 홍석규는 중상을 입었다. 비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문내용>
6ㆍ25사변을 도발한 북괴의 횡포가 극심하여 그 피해가 너무나 많은 지라 여기 고이 잠든 학병들은 사랑하는 고향을 지키고자 봉기하여 일어섰다. 연일 계속되는 격전속에 수많은 적을 물리쳤으나 중과부족으로 패색의 짙음에도 오히려 꽃다운 소년들로 구성된 학병들의 의분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적진에 뛰어 들어 많은 북괴군을 무찌르고 그 어린 넋은 의로운 절개를 지켜 산화하였다. 그들은 고향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몸과 뜻을 바치었으니 그 거룩한 정신을 천추만대에 두고 길이 명복을 빌고 노래하리라

관광지정보

  • 주소 : 갑천면 매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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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주차

찾아가는길

횡성 나들목→횡성방향→국도19호(갑천,청일방향)→갑천면사무소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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